"ISD 뒷돈 대는 펀드 2020년 공개…엘리엇 중재 자금줄 드러날 수도"

입력 2018-11-11 18:33   수정 2018-11-23 17:39

점점 커지는 '제3자 펀딩' 시장

투자자가 중재 비용 대신 부담
판정 결과로 얻은 수익 공유

각국 "불필요한 국제중재 조장"
중재인과 펀드간 유착관계 우려

ICSID, 제3자 펀딩 공개 의무화



[ 박종서 기자 ]
국제 중재업계를 선도하는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제3자 펀딩’이 있을 때 이를 공개하는 의무 규정을 사실상 확정했다. 의견수렴을 거쳐 이르면 2020년부터 적용할 예정이어서 글로벌 ISD 시장에서 자금줄 역할을 하는 금융회사들의 실체가 속속 드러날 전망이다. 제3자 펀딩이란 분쟁 당사자가 아닌 투자자가 중재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판정 결과로 얻은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을 말한다. 중재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된 ISD 소송에 ‘뒷돈’을 댄 펀드가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ISD 늘자 제3자 펀딩 확산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가 법무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과 함께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개최한 ‘서울 국제중재 페스티벌’에서는 ISD에 대한 제3자 펀딩 공개 이슈가 집중 부각됐다. 김준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SD에서 중재인(중재에서 판사 역할)과 투자자의 이해상충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ICSID가 최근 제3자 펀딩 공개 규정안을 마련했다”며 “올해 말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3자 펀딩의 정의부터 의무 공개 범위 등을 확정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국제중재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제3자 펀딩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국가 간 투자보장협정(IIA)이 3322건에 달할 정도로 확산하면서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20년간 제기된 ISD 사건은 모두 855건이다.

홍콩에서 활동하며 법률서비스와 관련한 제3자 펀딩 전문회사인 IMF벤삼의 쳉이 홍 투자매니저는 “우리 회사는 ISD 중재 등을 위한 펀딩을 해주면서 성과의 최소 60%를 중재 신청자에게 돌려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중재시장에서 제3자 펀딩 시장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런던시장에 상장된 글로벌 제3자 펀딩 전문회사 버퍼드캐피털의 순이익은 2014년 상반기 1700만달러에서 4년 만인 올해 상반기에는 1억6600만달러로 급증했다.


유엔도 규제 논의 시작

ISD에서 제3자 펀딩은 각국 정부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서 중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기업들에 ‘단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국가들에는 불편한 존재다. 국제중재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ISD의 제3자 펀딩을 금지하는 나라나 중재기관은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중재인이 제3자 펀딩 회사와 연루될 경우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중재인이 내리는 판결을 피고 국가 측에서 수용할 수 없게 된다.

ICSID 같은 중재기관이 제3자 펀딩 공개 의무화를 꺼내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UNCITRAL도 최근 제3자 펀딩과 관련한 초기 논의를 시작했다. 신희택 국제중재센터 의장은 “국가들은 무엇보다 ‘뒷돈’을 제공한 펀드와 중재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한다”며 “중재인이 투자한 펀드가 원고 격인 기업의 비용을 부담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재업계에서는 ICSID의 제3자 펀딩 규제가 발효되기 전이라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 소송의 자금줄을 알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새로운 규정은 소급 적용 의무가 없지만 중재인들이 투명성 강화를 위해 기업들에 공개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재 전문가는 “중재인들이 자신들의 판정에 신뢰를 더하기 위해 원고 격인 기업과 관계없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계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메이슨캐피털이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하는 등 외국 회사들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다”며 “만약 소송 당사자가 아닌데도 중재자금을 투입한 사람이나 회사가 있다면 결국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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